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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오래된 습관이 있다. 아침 식사 땐 반숙 계란을 먹고, 그 식사는 TV 앞에서 뉴스나 오락거리와 함께한다. 이 사소한 습관이 나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아침에 하는 TV 프로그램이란 대개 뉴스나 재방송 오락뿐이니 식사에 방해되지도 않는다. 그리고 나는 이 습관 이야기를 할 때면 꼭 한 친구가 떠오르고 만다. 내가 20대가 채 되기 전부터 알았던 그 친구에게도 알아채기 쉬운 습관이 있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 친구의 습관을 알아차린 것은 아니다. 내가 그 습관을 완전히 눈치챈 것은 친구가 독립한 뒤 집에 놀러 갔을 때부터였다. 친구의 집은 어디든 깔끔했으며 모종의 규칙이라도 있는 것처럼 모든 사물이 가지런히 배치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점점 짧아지는 친구의 손톱과 머리카락을 알아차렸다. 그것은 친구의 습관이었다. 그 친구의 습관은 친구 자신에게 피해를 주는 습관이었다. 친구가 잘못한 것이 아니었다. 나의 습관과 친구─Monique의 습관엔 대단한 차이가 있다는 걸 먼저 알리고 싶다. 난 나의 습관을 스스로 선택했지만, 모닉은 그러지 못했다. 모닉의 습관은 타고난 것에서부터 비롯된 습관이었다. 그러므로 모닉을 이해하는 모든 친구는 섣불리 모닉과 자신의 습관을 비교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내가 계란 후라이를 다 삼키기도 전에 모닉의 습관을 기억해낸 것은 모닉을 조롱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늘 그렇듯 사건 사고가 흘러나오는 뉴스를 보며 나는 어제 가방에 잘 넣어둔 작은 봉투 하나와 스마트폰을 꺼냈다.

 

 

 

─어.

 

스마트폰 액정을 보니 통화버튼이 눌러진 지 2초도 채 되지 않았다. 모닉과의 통화는 늘 이런 식이었다. 모닉은 전화벨 소리가 길게 울리는 것을 싫어했다.

 

─안젤릭한테 소식 들었어?

 

수화기 너머가 조용했다. 나는 가슴 한구석이 불안해지는 느낌이었다. 아직 안젤릭이 모닉에게 전화를 못 걸었을 수도 있다. 모닉의 대답을 기다리며 난 하얀 봉투 속 네모 반듯한 종이를 꺼내 들었다.

 

─며칠 전에. 너한테 청첩장 받으라더라.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하얀 봉투 안에 있던 것은 청첩장이었다. 신랑 신부의 이름이 반듯하게 적힌 청첩장 아래에 모닉의 이름이 함께 있다. 청첩장의 주인공인 안젤릭이 쓴 글씨다. TV에선 여전히 지난밤의 사건들을 차례로 내보내고 있었다. 난 청첩장의 내용과 TV 화면을 무성의하게 대충 바라보며 다른 한 손으론 낡은 수첩을 찾았다. 이미 스마트폰은 어깨 사이에 끼워놓은 상태였다.

 

 

 

─급하게 결혼 준비한다고 너무 바빠서 그래. 올 거냐? 그냥 식구들이랑 친구 몇 명만 부른대. 그 정도면 너도 괜찮잖아.

 

수첩을 발견했다. 볼펜 뚜껑을 열었다.

 

─안 돼. 걔한테 못 간다고 당부했어.

 

 

 

이틀 미뤄졌어. 그건 아직 모르지? 볼펜으로 청첩장의 날짜를 고쳐 적었다. 수화기 너머로 모닉의 망설임이 느껴졌다. 그래도 애매해. 못 갈 수 있어. 정말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빈 수첩 위에 모닉의 이름을 적었다. 아예 가능성이 없는 것보다 낫다. 어쩔 수 없지, 안젤릭도 신경 안 쓸 거야. 말하며 나는 훑어보던 청첩장을 도로 흰 봉투 안에 넣었다. 끓는 듯한 신음이 들렸다. TV에서 들린 건가? TV 화면을 무심코 바라보자마자 모닉의 단호한 명령이 떨어졌다. 필립, TV 볼륨 줄여. 소리 별로 크지 않은데,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네, 선생님. 모닉이 얼마나 소리에 예민하게 구는지 나도 알고 있으니 아예 전원을 꺼버릴 요량이었다. 리모컨을 찾아 전원 버튼을 누르려던 순간, 뉴스가 다음 소식으로 넘어갔다. 뉴스의 내용을 가만히 경청하던 나는 모닉의 말을 듣기로 했다. TV 소리를 작게 줄였다. ……보복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수첩 위, 모닉의 이름 아래 몇 가지 끄적이며 나는 끊임 없이 TV 화면을 힐끔거렸다.

 

 

 

─모닉, 그리고 안젤릭이 화관이랑 부케, 네 가게에서 하고 싶대. 화환 대신 화관을 쌓아 놓고 사람들한테 하나씩 나눠주고 싶다는데, 어때?

─그건 해야지. 얼마나 필요한데?

─청첩장 전해줄 겸 내일 가게에 찾아가서 말해줄게. 전화로 말하기엔 안젤릭 요구가 너무 많다. 아무 때나 가도 돼?

 

 

 

갑자기 모닉의 대답이 끊겼다. 뉴스는 어느새 또 소식을 바꿔 이번엔 날씨를 전했다. 짧은 인내 끝에 나는 그대로 TV 전원을 꺼버렸다. 모닉? 급하게 전화 볼륨을 올리며 소리치자 모닉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잠깐, 필립 잠깐만. 크게 말하지 마. 그냥…머리가 아파서 그런 거야. 무언가 억누르듯 모닉의 말이 드문드문 끊어졌다. 아까부터 들리던 신음은 모닉이 고통을 삼키는 소리였다. 이상한 일이다. 고통은 아무리 반복해도 익숙해지지 않지만, 고통이 가져오는 괴로운 감정은 반복할수록 익숙해진다. 쉽게 드러내지 않는 모닉의 저 고통이 나에겐 아주 익숙했다. 모닉은 늘 고통 안에 산다고 말했다. 그리고 또 죄 속에 살고 있다고도 말했다. 어떤 고통도 없을 것 같은 모닉의 무뚝뚝한 얼굴 속에 고통이 잠들어 있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그렇게 나는 모닉의 고통을 상쇄한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기게 된다. 그러다 한 번씩 모닉이 곧 죽을 것처럼 아파하면 그제야 두려워졌다. 나는 두려워졌다. 두렵지 않게 됐다. 나는 죽을 만큼 괴로운 통증을 모르지만, 살아 숨 쉬는 것은 알고 있다. 모닉의 고통은 죽음이 아니라는 것을 배우기 위해 많은 시간을 들였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모닉은 죽지 않았다. 그저 곧 끊어질 것 같은 목소리로 더듬더듬 거절했다. 내일 가게 문 못 열어. 오지 마. 그럼 오늘은? 꺼져.

 

 

 

 

 

 

 

 

 

 

"화낼 거야. 분명 화내겠지."

 

모닉에겐 건드려선 안 될 시기가 한 번씩 찾아오곤 했다. 나와 몇몇 모닉의 친구들은 그 점을 아주 서운하게 생각했지만, 결국 모닉의 곁엔 나를 비롯해 모닉을 이해하는 사람만이 남았다. 어제 전화한 바론 지금이 바로 모닉의 그 시기였다. 그걸 알면서도 기어코 모닉의 꽃집까지 찾아와놓고 나는 어린아이처럼 들뜬 기분이었다. 마음 같아선 당장 어제 찾아왔을지도 모르겠다. 그토록 내가 모닉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아주 유혹적인 것이었다. 우연히 찾은 아름다운 것을 부모에게 보여주고 싶은 어린아이의 조급한 마음이었다. 시기가 좋지 않은 것 같지만─아니, 오히려 이런 시기라야 맞다. 안갯속에 흐린 간판이 내 눈에 들어왔다. 'M', Monique Clement의 꽃집이다. 모닉은 허튼소리를 하지 않는다. 모닉이 내게 미리 당부한 대로 모닉의 꽃집은 굳게 닫혀있었다. 모닉의 성격만큼 말끔하게 정리된 가게 안엔 유리 속 푸른 불빛을 제하고 아무 빛도 없었다. 나는 닫힌 가게 창을 노크하듯 몇 번 두드렸다. 늘 이곳에서 모닉은 혼자 앉아 있었다. 그 무거운 화분 상자와 꽃들을 모두 혼자 옮기고, 혼자 정리하고, 혼자 견뎌낸다. 모닉을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나는 모닉의 그 과묵함이 연약함에서 나온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연약한 제 몸을 꺾을 수 없도록 멀찍이 물러나는 연약함. 나는 모닉을 아주 좋아했다. 좋아하는 것은 구태여 꺾어내지 않는다. 여태까지 나는 모닉의 약한 것들을 지켜왔다. 예전부터 모닉은 이런 시기에 특히 혼자 있길 원했고 나는 혼자 있을 수 있도록 내버려두었다.

하지만 모닉, 나는 오늘 널 꼭 봐야 할 이유가 있어. 너도 어쩌면 아주 좋아할지도 몰라. 나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내 이성은 아까부터 날 다시 내 집으로 끌고 가려 했지만, 오늘만큼은 본능에 따르기로 했다. 모닉의 집은 가게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걸어서 20분, 차로 5분이면 도착하는 곳이다. 나는 기꺼이 그곳까지 찾아가기로 했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참 이상한 일이다. 맹세코 나는 한 번도 모닉의 말을 거역한 적이 없었다. 모닉은 나의 하나뿐인 선생님이었으니까. 선생님이 보지 말라고 명령한 문제를 풀어온 학생이 칭찬을 받을 수 있을까? 손끝이 찌릿했다.

잠깐 걸었을 뿐인데 모닉의 집이 저 멀리서부터 보였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초인종을 누르는 순간 평소에 듣기 힘든 모닉의 선명한 신경질이 쏟아질 것이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어느새 굳게 닫힌 모닉의 집 앞에 걸음을 멈췄다. 자꾸만 키패드에 눈이 간다. 나는 저 비밀번호를 알고 있다. 초인종을 누르는 것은 내게 남은 마지막 양심이었다. 내가 이곳에 왔으니 너도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일종의 약속이었다. 결국, 나는 네모나고 하얀 버튼 위로 손을 옮겼다. 그리고 차마 누르기도 전에 날카롭게 소리 지르는 목소리(아마도 모닉일 것이다.)가 벨 소리 대신 내 귀를 찔렀다. 나는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도둑질하기도 전에 들킨 것처럼 억울한 마음마저 불쑥 솟았다. 나는 당장 키패드를 누르고 안으로 들어갔다. 더욱 노골적으로 들리는 외마디 외침이 자꾸만 나를 혼미하게 했다. 이미 나는 달리고 있었다. 거실을 지나 모닉의 방문을 벌컥 열었다. 온통 새까맣다. 새까만 벽, 새까만 바닥 위에 침대와 모닉 말곤 아무것도 없었다. 모닉은 딱딱한 침대 위에 앉아 잡히지도 않는 제 머리를 잡아 뜯으며 소리치고 있었다.

 

 

 

 

 

 

 

 

 

 

머리를 잡아 뜯은 이유가 뭐야?

 

머리가 너무 아파.

 

소리는 또 왜 질렀고.

 

다른 소리 듣기 싫었어.

 

언제부터 그랬어.

 

이제 2~3일만 버티면 된다.

 

언제까지 그래야 하는데.

 

나랑 시비 틀 거면 당장 꺼져. ……미안.

 

이제 이럴 필요 없을지도 몰라.

 

미안한데 더 얘기하고 싶으면 세 걸음 물러나.

 

벗어날 수 있어.

 

물러나, 필립.

 

내가 찾았어.

 

아니면 꺼지든가.

 

도와줄게. 네가 들을 준비만 되면…….

 

그냥 꺼져. 더 못 버티겠으니까. 제발, 좀, 빨리.

 

아파? 모닉, 고개 들어봐. 내 얼굴 보여?

 

 

 

 

아파, 머리가 아프다고. 꺼지랬잖아. 나 만지지 마. 따가워. 아파. 크게 소리 지르지 마. 여기서 꺼져. 시끄러워, 시끄러워.

 

 

 

 

 

 

 

 

 

 

모닉 클레망은 생각 없이 스마트폰 액정 위로 몇 번 손가락을 움직이다 가게 한구석에 달린 시계를 바라봤다. 검은 바탕에 빨간 글씨로 1분 마다 숫자가 바뀌는 디지털 시계였다. 어느 날 째깍 이는 시계 소리를 못 견뎌 바닥에 팽개쳐 부순 뒤로 집이든 가게든 모닉은 아날로그 시계라면 쳐다보지도 않았다. 시간이 제법 늦었다. 이제 곧 가게 문을 닫을 시간이었다. 지금부터 움직여야 밖에 옮겨둔 화분과 꽃을 모두 정리할 수 있을 텐데, 어쩐지 모닉은 오늘따라 몸이 무거웠다. 될 대로 되라지. 스마트폰을 엎어두고 모닉이 모자를 벗었다. 종일 눌린 머리카락을 몇 번 손끝으로 긁듯이 털어내자 완전히 살아나진 않아도 제법 봐줄 만하게 변했다. 짤랑, 작은 종소리가 들렸다. 모닉이 반사적으로 가게 문을 바라보며 도로 모자를 눌러썼다.

 

 

"지금도 꽃 살 수 있어요?" 교복을 입은 한 학생이 유리문 너머로 빼꼼 고개를 들이밀었다.

 

모닉이 다시 힐끔 시계를 바라봤다. 왜 학생이 아직 교복 차림이지? 피어오른 작은 의문을 툭 구석으로 밀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모닉의 짧은 대답에 학생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학생이 조심스럽게 문을 닫자 종소리가 다시 작게 울렸다.

 

"빨간 장미꽃 한 송이만 예쁘게 포장해주세요. 가장 흐드러지게 핀 꽃으로요."

 

 

 

학생의 말에 모닉의 시선이 장미꽃이 잔뜩 꽂혀있는 통으로 향했다. 그 안엔 아직 봉오리 진 것도, 이제 갓 꽃잎을 펴낸 것도, 학생이 바라는 대로 완전히 흐드러져 화려하게 벌어진 것도 있었다. 그중 제일 아름다운 꽃은 흐드러진 꽃이었다. 꽉 닫힌 봉오리를 힘껏 열어 그렇게 활짝 피기까지 꽃이 바친 대가를 생각한다면 가장 아름다운 것이 타당하다. 누군가 모닉에게 묻는대도 모닉 역시 흐드러진 꽃이라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모닉은 고개를 저었다.

 

"활짝 핀 꽃은 금세 시들어요."

 

 

제 몸을 한껏 벌려 아름답게 꾸며낸 저 꽃은 얼마 가지 않아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뚝뚝 붉은 꽃잎을 떨구리라. 말없이 모닉이 장미 한 송이를 꺼내 들었다. 꽃잎이 단단하게 뭉친 둥근 모양의 장미였다. 모닉이 말없이 학생을 향해 장미를 살짝 흔들었다. 학생도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상관없어요. 그냥 가장 활짝 핀 꽃으로 주세요. 학생이 흐드러지게 웃었다. 도로 통 안에 장미를 꽂은 모닉이 한눈에 봐도 가장 활짝 핀 장미를 꺼내 작업대 앞으로 가져왔다. 금세 됩니다. 거기 앉아서 잠시만 기다리세요. 모닉이 작업용 가위를 손에 끼우고 긴 장미 대를 툭 잘라냈다. 둔탁한 두통이 울컥 솟았다. 시야 안에 붉은색이 가득하다. 문득, 모닉은 장미가 성모마리아의 꽃이라는 것을 기억해냈다. 그녀의 아들은 제물로서 모든 원죄를 짊어지고 죽음을 맞이했다. 그렇다면, 내가 계승 받은 이 원죄는 무엇인가.

 

 

가위 끝으로 잔가시와 잎이 잘려나갔다. "제물." 반쯤 손에 익은 대로 움직이던 모닉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지난날 터질듯한 두통과 불안 속에 필립이 제 귓가에 끊임없이 속삭인 말이었다. 헛된 말이었다. 어느새 장미꽃은 간단하지만 퍽 아름다운 모양으로 바뀌었다. 흐드러진 꽃잎이 곧 떨어질 것 같이 너무 붉었다. 무거운 제 몸을 번들거리는 포장지 위에 뉘어 아슬하게 버티고 있는 모양새였다. 그 모습이 불안해 보이는 것은 모닉뿐이었는지 꽃을 받아든 학생의 표정이 밝았다. 진짜 아름다워요. 감사합니다. 모닉이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오늘의 마지막 손님이었다. 학생의 교복 자락이 안개 너머로 사라지고 이제 정말 더는 마감을 미룰 수 없는 시간이 되었다. 모닉과 같은 자가 어둠 속을 혼자 돌아다니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가볍게 몸을 푼 모닉이 밖에 내어둔 무거운 화분을 가게 안쪽으로 옮겼다. 하루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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