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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킬 수 없는
150806 2nd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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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꿉장난 같았다. 나는 엄마가 되고 당신은 아빠가 되고 사람들에게 말을 전한다.

 

─너희 아빠를 이해해주렴.

 

울컥 역겨운 것이 솟았다.

 

 

 

 

 

 

돌이킬 수 없는

Monique clement

 

 

 

 

 

 

*

다리를 꼬고 가게 한구석을 둘러보는 필립을 바라보던 모닉이 소리 나게 펜을 내려놓았다. 신경질 섞인 소음에 움찔, 필립이 어깨를 떨었다. 지은 죄가 있어 필립은 그저 안젤릭의 귀여운 글씨가 잔뜩 적힌 수첩을 살랑살랑 흔드는 수밖에 없었다. 필립의 독촉전화─가게 앞에 도착했으니 당장 문을 열라는─에 이른 아침, 잠에서 깬 모닉의 눈가에 피곤함이 잔뜩 묻어났다. 적어도 이틀 전엔 미리 전화하라고 했는데. 낮게 깔린 모닉의 목소리에 필립이 밝은 얼굴로 웃으며 다시 안젤릭의 노트를 흔들었다.

 

“나도 일하는 사람인데 어떻게 항상 이틀 전에 시간이 나겠어.” 좀 봐줘, 모닉. 얄미운 웃음이 필립의 목소리에 섞였다. 필립, 너답지 않다. 툭 떨어지는 말에 필립의 표정이 짧게 굳었다. 모닉 클레망은 이해할 수 없는 침묵이 흘렀다. 모닉은 침묵엔 여러 종류가 있음을 알고 있다. 그 수많은 분류는 온전치 않은 모닉으로선 불가능하므로 어쩔 수 없이 모닉은 두 가지 분류로 나누어 두었다. ─좋아하는 침묵과 싫어하는 침묵. 지금 찾아온 침묵은 그 둘 중 어디로도 분류할 수 없는 침묵이었다. 어딘가 불편한 침묵. 미동 없이 필립을 바라보던 모닉이 손을 뻗었다. 필립이 건넨 수첩 안엔 안젤릭의 목소리가 들릴 것 같이 상세한 오더가 적혀있었다. 종이를 펄럭이던 모닉이 수첩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섬세함은 안젤릭의 성격일 뿐, 오더 양으로 따진다면 굳이 필립이 가게까지 찾아올 정도로 많은 건 아니었다.

 

“생각보다 적다. 대부분 내 안부를 묻는 말이고. 안젤릭이 직접 보여주라고 했어?”

“아직 기억해?”

필립 스튜어트는 가끔 모닉 클레망의 이야기를 이어가기 싫은 것처럼 말했다. 모닉은 말문이 막힌 채 눈동자를 굴렸다. 필립의 언어엔 주어가 없었다. 뭘? 다소 날카롭게 튀어 나간 모닉의 말에 필립이 깊은 눈웃음을 지었다. 잊으면 안 돼, 모닉. 그건 현실이야. 어차피 똑같이 죽음을 맞이할 거라면 네가 죽여 버려, 모두. 필립이 모닉의 뺨을 감쌌다. 필립, 꺼져. 하하, 필립이 웃었다. 

 

 

 

 

 

 

*

모닉 클레망의 삶은 휴식과 빈틈으로 가득 차 더 비울 곳이 없었다. 모닉에게 있어 모든 휴식은 필요한 필수품이었고 그중 어떤 것이 빠진다 해도 다시 되잡기 위해 오랜 시간 무던히 노력해야 했다. 주기마다 상태가 좋지 않을 때 망설임 없이 가게 문을 닫아버리는 것도 그와 같은 이치였다. 차라리 하루 손해 보는 것이 낫지. 하루 손해 보는 것은 어떻게든 괜찮다. 괜찮았다. 지금 모닉 클레망은 그 ‘하루’가 어쩌면 괜찮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 하루만 벌써 다섯 번째 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 가게 문 앞에서 서성이며 들어올까 말까 고민하는 소녀를 보며 모닉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제 주변인에겐 부러 감추지 않은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모두에게 오픈한 것도 아니다. 모닉은 이런 방식으로 자신이 계승자라는 걸 동네방네 떠들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아마 이미 M의 모닉 클레망을 의심스럽게 보는 자들이 있을 것이다. 평소보다 훨씬 더 지끈거리는 머리를 모자 위로 조금 주무르고 모닉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평소라면 손님이 무엇을 하든 가게 안으로 들어오든 나가든 신경 쓰지 않았겠지만, 저 소녀는 누가 봐도 너무나도 수상했다.

 

“찾는 꽃이라도 있나요?”

화들짝 놀란 소녀가 눈치를 보다 거세게 고개를 흔들었다.

“아, 아뇨! 저, 음, 안녕히 계세요!”

 

급히 달려 도망친 소녀가 있던 자리에 쇼핑백 하나 놓여있었다. ─PIERRE MARCOLINI. 조심스럽게 쇼핑백을 집어 든 모닉이 소녀가 사라진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거 먹어도 되는 건가. 소녀는 다시 올 것 같지 않았다. 달콤한 것이라면 싫어하지 않지만.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온 모닉은 망설임 없이 포장지를 뜯었다. 어차피 소녀의 동태와 ─학생이 사기엔 퍽 비싼 가격의─ 브랜드만 보더라도 애초에 이 초콜릿은 제 것이 되었으리라.

피에르 마르콜리니와 독대한 이후로 모닉 클레망의 가게는 마치 스파이들의 접선 장소처럼 변해갔다. 날마다 이상한 표식을 들고 와 자신이 계승자임을 비밀스레 전하는 자들이 늘어났다. 대체 그런 표식은 누가 알려준 거야? 난 정한 적이 없는데. 모닉이 달콤한 초콜릿을 입에 넣어 녹였다. 초콜릿을 덮고 있던 상자 위엔 하얀 글씨로 피에르 마르콜리니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이번 표식은 이거였을까? 어차피 모닉이 전하는 모든 말은 피에르 마르콜리니의 입에서 나온 것들이었다. 굳이 그들이 이 꽃집까지 찾아오지 않더라도 언젠가 듣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모닉 클레망은 이 한적한 꽃집을 찾아오는 자들의 마음을 알 수 있다. 밖에 자욱한 안개가 없는 세상이 상상 되지 않듯이 모닉에게도 뿌연 두통과 예민한 신경증이 없는 삶은 상상 되지 않는다. 그토록 오래 삶에 박힌 죄악─이라고 부르는 게 맞을까? 모닉 클레망은 옅은 혼돈에 시달렸다.─을 뽑아낼 방법이라면 무엇이든 할 것이다.

짧은 상념에 빠진 사이 초콜릿이 모두 녹아 넘어갔다. 또 다른 초콜릿을 집어 들려는 순간 가게 문 종소리가 울렸다. 눈 밑에 점이 인상적인 남성은 망설임 없이 모닉이 앉아 있던 카운터로 다가왔다. 모닉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노란 꽃’을 포장하러 왔소.”

 

모닉의 눈동자에 의문이 담겼다. 고개를 끄덕이며 나온 모닉이 가볍게 가게를 쭉 가리켰다.

“세상엔 노란 꽃이 많죠. 원하시는 품종이 따로 있으십니까?” 

남자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다. 그제야 모닉은 남자에게서 느껴지는 위화감을 눈치챘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설마, 이게 표식인가? 노란색은 계승자와 아무런 상관도 없다. 모닉은 울컥 올라오는 화를 삼켰다. 남자의 표정을 보니 확실한 것 같았다. 짧은 숨을 내쉬고 모닉이 먼 바깥을 바라보았다. 제 공간을 뺏기는 것은 질색이다. 피에르 마르콜리니가 들고 온 것이 제 삶이 아니었다면 제 삶에 얼마 없는 여유를 떼어주지 않았을 것이다. 죄는 모닉 클레망의 모든 소중한 것을 앗아갔다. 남은 것은 죄악과 모닉 클레망 밖에 없었다. 죄가 사라진다고 사라진 것들이 다시 태어나는 것은 아니겠지만, 아마 다시 쌓아갈 시간 정도야 제게 남았으리라. 피에르 마르콜리니가 들고 온 것은 모닉 클레망의 전부였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이런 파수꾼 역할도 도맡아 할 뿐이다. 모닉은 제 두통이 어쩐지 점점 더 심해진다고 생각했다.

 

“이제 곧 사냥꾼이 없는 밤이 올 겁니다.”

“네 말을 어떻게 믿지?”

“안 믿기면 왜 가게까지 찾아오는 겁니까? 연구는 스스로 하세요.”

 

날카롭게 튀어 나간 말은 담지 못하고 꼬리를 남긴다. …미안합니다. 한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모닉이 중얼거렸다. 눈 밑에 점이 있던 계승자는 기어코 노란 꽃 한 송이를 포장해갔다.

 

 

 

 

 

 

*

뿌연 빛이 차올랐다. 잠들지 못하는 것보다 꿈꾸는 것이 백분 나았지만, 어떤 꿈은 눈을 빼앗는다. 곧 타오를 것 같은 갈증을 깊이 감춰놓고 나니 모닉 클레망에겐 깨질 듯한 두통과 터질 듯한 고막, 분출할 데 없는 신경증만이 남았다. 모닉 클레망은 깨달았다. 이 이야기에 좋은 끝이란 없다. 목을 조여 오는 갑갑함에 모닉이 목을 긁었다. 짧고 뭉툭한 손톱은 목에 아무런 상처도 남기지 못했다. 이윽고 거친 손이 목을 감는다. 숨이 막히고 시야가 여러 색으로 갈라져 분리될 때쯤 모닉의 귓가에 다시 이상한 목소리가 침범한다. “누나, 난 죽기 싫어.” 붉게 젖은 눈을 깜박였다. 씨팔, 난 죽고 싶어.

모닉 클레망은 알고 있었다. 제 손으로 부러뜨릴 수 있는 건 고작해야 장미 줄기 정도뿐이라는 것을. 더 잠들지 못하고 밤이 흘렀다. 어쩌면 안개 너머로 목줄을 쥔 자들이 지켜봤을지도 모르겠다. 모닉이 침대 위에 몸을 쓰러뜨렸다. 도저히 가게 문을 열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시트를 움켜쥔 모닉이 옅은 신음을 흘렸다. 피에르 마르콜리니, 내 삶이 당신 혀뿌리에 걸렸어. 이제 올인할 곳이 당신밖에 없어. 그 유혹이 아니었으면 처음부터 응하지 않았을 거야. 초콜릿같이 한낱 체온에 녹아 흘러버릴 거라면 끈적거리지 마. 자꾸 나에게 도와달라고 하지 마. 고개를 돌린 곳엔 피에르 마르콜리니가 없었다. 피에르의 목소리도 모닉의 목소리도 모두 존재하지 않았다.

 

 

 

 

 

 

*

레오폴트 1세가 피에르 마르콜리니를 부정했어, 모닉. 알고 있어?

필립, 화관 때문에 온 거 아니냐?

너한텐 이게 더 중요하잖아.

난 엔젤릭이 더 중요해.

화관을 엮던 모닉의 손이 멈췄다.

─필립, 피에르 마르콜리니를 알아?

필립은 모닉의 눈에 초점이 없다고 느꼈다. 필립의 발이 한걸음 뒤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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