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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129 조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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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이 깊었다. 타오르던 태양이 자취를 감추고 묻어온 빛을 반사하는 달이 한가운데 떴다. 어둠이 원하든 그렇지 않든 어둠 속엔 늘 악이 머물고 있다. 작은 빛이나마 닿지 않는 곳에 스스로 묻힌 자부터 추악한 얼굴을 가릴 만큼의 약한 어둠이나마 새어 나오면 곧바로 몸뚱일 움직이는 가벼운 자들까지. 어둠엔 스쿠가를 제외하더라도 아직 타락한 이들이 많이 머물렀다. 그들이 토해낸 밤하늘 아래엔 많은 것들이 떠다녔다. 유쾌한 타락 자의 싸구려 향수 냄새, 고급 향유 냄새, 고함, 노랫소리, 개소리.

 

  조슈아 버튼의 앞을 가로막은 이들이 태평하게 개소리를 지껄였다. 밤에도 환한 빛을 뿜는 대로변을 벗어난 지 채 1분도 안됐다. 비단 그들이 나타난 것이 좁아진 길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그들이 아름다운 아가씨에게 용기를 낼 수 있던 데에는 비교적 어둡고 좁아진 골목 탓도 있었으리라. —조슈아 버튼, 단정한 젊은 신사에게 어울릴 법한 이름이 지금은 긴 백금발 아가씨에게 붙었다. 그 이름조차 그—아니, 그녀—에겐 어울렸다. 그러나 영 아쉬운 것을 하나 꼽자면 쓸모없는 남정네들도 함께 붙었다는 것이다. 어두운 밤이면 으레 술 취한 젊은이들에게서 볼 수 있는 풍경이었지만, 점점 주변이 어두워질수록 여린 여인의 몸을 한 조슈아에게 위협이 다가오고 있었다. 시간 없어? 이제 생길 거 같지 않아, 예쁜이? 어느새 조슈아의 앞길을 막아선 남자가 천천히 조슈아 앞으로 다가갔다. 상대할 필요 없었다. 무시하고 뒤돌아선 조슈아의 표정이 옅게 일그러졌다. 이미 남자의 다른 일행이 뒤를 막아선 후였다. 내가 술도 사준다니까? 왜 이렇게 까다롭게 굴어. 끈질기게 추근거리던 남자들을 무시로 일관하던 조슈아가 결국 완전히 걸음을 멈췄다. 여자에겐 위험한 골목이었다. 조슈아를 둘러싼 남자들은 충분히 건장한 자들이었고 그러한 상황을 이용해보고자 했겠지만, 그들이 두 가지 간과한 것이 있다. 조슈아가 군인이라는 점과 원래는 남자였다는 점. 체격 차이에 조금 압박을 느꼈을 뿐, 이 상황이 그다지 조슈아에게 위협적이진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마냥 좋은 상황만도 아니었다.

 

  곤란하게 됐어. 조슈아가 천천히 주변을 살폈다. 이미 어둠이 많이 내려앉은 뒷골목엔 작은 빛이나마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조슈아를 둘러싼 남자들 뒤편으로는 무엇이 있는지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어둠뿐이었다. 도움을 청하는 척 빠져나가긴 힘들어 보였다. 상대하는 수밖에. 성가신 상황이라고 해서 굳이 험악한 방법을 쓸 필욘 없었다. 적당히 내쫓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조슈아 버튼이 저를 둘러싼 세 명의 남자를 둘러보았다.

 

 

 

 

 

  **

 

  안젤리카 거투르드는 죽을 맛이었다. 연구소에서 받은 물약을 마신 뒤로 계속 그랬다. 물약을 마시자마자 작열하는 갈증에 물을 병째 들고 마셨으나 갈증은 나아지지 않았다. 연구소에서 안정화가 끝나지 않은 약을 준 걸까? 간혹 약의 부작용 중에 갈증이 심해지는 것도 있으나, 왠지 그 상태가 심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늘 따뜻한 볕 아래서 가만히 앉아있는 것을 좋아하는 안젤리카였으나, 물약을 마시고 나니 왠지 햇빛 아래 서는 것조차 꺼려졌다. 내키진 않지만, 자기 자신도 이해 가지 않는 상황에 억지로 커튼을 젖히자 안젤리카 몸 위로 반짝이는 햇살이 쏟아졌다. 별문제는 없었다. 없다고 생각했지만,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몰려오는 욕지기에 안젤리카가 급하게 화장실로 달려갔다. 이거 정말 야단났네.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다. 게다가 아까부터 코끝에 자꾸 맴도는 이 향기는 철 냄새 같기도 했고 역한 비린내 같기도 했다. 본능적으로 안젤리카는 깨달았다. 이것이 바로 저의 갈증을 해결해줄 단비이리라. 제 몸이 원하는 단 하나의 음식이었다. 뭐가 먹고 싶은 거지? 헛구역질에 먹고 싶은 음식까지. 불안한 생각이 맴돌았으나 이내 금세 접을 수 있었다. 거울에 비친 안젤리카의 송곳니가 날카롭게 반짝였다. 바로 이거구나. 안젤리카가 제 손가락을 송곳니 끝에 가져가 지그시 눌렀다. 툭 살점이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날 선 통증이 찌릿하게 퍼졌다. 손가락을 타고 흐르는 붉은 피를 입술 속에 감추자 사막바람에 메말랐던 혀가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그러나 이것으론 어딘가 부족했다. 진정 원하는 건 이런 게 아니다. 아이처럼 제 손가락을 입에 물고 우물거리던 안젤리카가 시계를 바라보았다. 일단 밤까지 버텨야겠지?

 

 

 

  그리고 밤이 깊었다. 맛있는 반찬을 앞에 두고 한나절 기다린 어린아이처럼 애타게 때를 기다리던 것과 다르게 안젤리카의 움직임은 영 신통치 않았다. 갑자기 문 열고 피 달라고 하는 건 좀 웃기지? 본부 내를 알짱거리다 결국 밖으로 나와 정처 없이 흐느적거리며 걷던 안젤리카가 주변을 둘러봤다. 어느새 제법 번쩍이는 밤거리였다. 이왕 나온 김에 피는 못 마셔도 달콤한 케이크는 하나 먹고 가는 게 좋겠어! 찔러 넣은 주머니 속이 텅 비었다. 안젤리카의 기분이 바닥으로 내리꽂혔다.

 

 

 

 

 

  **

 

  제 주변을 막고 있는 남자들을 천천히 둘러본 조슈아의 입술 끝에 미소가 걸렸다. 천천히 살펴보니 아직 제법 어린 태가 나는 청년들이었다. 개중에도 무리로 뭉치면 없던 용기가 솟고 세상이 저들 것인 양 활개 치는 그런 치기를 품은 자들이리라. 저보다 약한 여성을 곤란하게 만들면서도 단 한 번 그 수작이 먹혀들어간 적도 없어서 (있을 리 없는 일이지만) 만약 조슈아가 정말로 함께 가서 놀겠다고 해도 정작 당황하며 서로의 눈치를 볼 그런 자들이었다. 됐습니다. 생각 없으니까 비켜주세요. 제 앞에 선 남자를 밀어내려 손을 뻗던 조슈아가 움직임을 멈췄다. 남자의 허리에 무언가 있었다. 낯선 손이었다. 그대로 시선을 올렸다. 남자의 시선이 흐리게 흔들렸다. 숨을 쉬지 못하는 모양새였다. 이상한 낌새를 맡은 다른 이들이 고개를 돌렸다. 남자가 무너졌다. 쓰러진 남자 대신 다른 이들이 비명을 질렀다. 조슈아가 제 발밑에 쓰러진 남자를 내려다보았으나 하얗게 질린 얼굴을 제하면 이상한 점이 없었다. 그러나 그 생각은 금세 고쳐졌다. 빨갛게 물든 남자의 등이 천천히 흐린 빛에 노출되자 나머지 두 사람이 혼비백산하며 도망쳤다. —에구구.

 

 

 

  “이렇게 예쁜 아가씨가 혼자 다닐 생각을 다 했네요?”

 

 

 

  어둠 속에서 작은 그림자가 분리되었다. 분명한 어둠이었지만, 스쿠가와는 다른 어둠이었다. 천천히 빛을 받은 얼굴이 하얗고 붉었다. 회색 눈동자를 장난스럽게 반짝이던 여인—안젤리카가 고개를 가볍게 살랑거리며 평소보다 더 찬란한 색으로 번들거리는 입술을 오물거렸다. 집이 어디예요? 데려다줄까요? 흡사 소녀들의 재잘거림 같았다. 안젤리카가 텅 비어버린 골목을 아쉽다는 듯 둘러보았다.

 

 

 

  “힝, 모두 도망갔으니 목축이기도 글러 먹었네요.” 한나절은 족히 기다렸는데.

 

 

 

  아가씨가 대신해줘야 되나?

 

 

 

  안젤리카의 눈이 장난스럽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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