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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의 얼굴을 모른다.
140716 1st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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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어둠 속 가끔 다가오는 그 그림자를 모르지 않았다. 아직 어릴 적 드물게 괴로운 밤을 보내고 있으면 늦거나 이르거나 늘 그 그림자는 다가와서 내 이마에 키스하고 볼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나는 언제나 가슴 깊이 우러나는 기도를 바쳤다.

주여, 그를 죽여주세요.

 

 

Mission 1st. 나는 그 아이를 모른다.

나는 신의 얼굴을 모른다.

 

 

이날 연습은 시작부터 공쳤다. 아침부터 어수선했던 교내 분위기는 도무지 사그라질 줄 몰랐고 한참 호기심이 들끓는 수감소의 소년들 또한 굳이 진정하기 위해 애쓰지 않았다. 여기나 저기나 하나같이 같은 사건을 떠들고 있었다. 저녁배식 시간에 누군가가 우스갯소리로 ‘만약 지금 돌고 있는 소문이 모두 진실이라면 우린 그 3학년의 출생부터 마지막까지 죄다 알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소년들의 입에선 못된 통일성을 가진 말들이 뛰쳐나왔다.

그러나 몇몇 4학년―앞의 숫자는 어떤 것으로든 치환할 수 있지만― 무리는 그 입술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것이 그들의 정신적 성숙함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썩은 자부심이었다. 지극히 폐쇄적인 학교, 누구도 감히 억측할 수 없는 수용소 안에서 4년이란 시간을 보내는 동안 그보다 더한 무언가도 능히 지나갔다는 일말의 자존심이기도 했다. 세이지가 이날 저녁을 함께한 무리도 그러한 무리였다. 사방에서 왁자지껄하게 떠들어대는 자극적인 이야기를 무시하며 도리어 그들을 비웃는 걸로 그들은 욕구를 해소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세이지 또한 그런 부류에 속하느냐면 전혀 아니었다. 입술을 놀리는 두 무리 모두 그에겐 어딘가 찝찝했다. 평소 작은 말에도 곧잘 대꾸해주던 세이지가 옅게 미소만 지을 뿐 특별한 첨언을 하지 않자 그들은 눈치를 보는가 싶더니 이내 세이지의 대답은 신경 쓰지 않고 저들끼리의 말을 이어갔다.

 

“망조라더니, 세계멸망은 예언자가 시키는 게 아니라 신봉자들이 시키는 걸 거야.”

“가장 큰 신봉자가 자네 아니었나? 오늘 철학 시간에 세계가 멸망할 테니 사과나무를 심으러 가겠다고 떠들던 놈이 누구였는가?”

웩, 늙은이 같은 말투. 무리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세이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늘 주변인들의 식사가 끝날 때까지 함께 말동무를 해주던 세이지가 그답지 않게 자리를 뜨자 테이블에선 작은 정적이 감돌았다. 평소보다 조금 더 창백해진 얼굴로 세이지가 작게 웃었다. 컨디션이 조금 안 좋아서. 미안. 신경 쓰지 말라며 가볍게 고개를 내저은 세이지가 점점 테이블에서 멀어졌다. 정말로 컨디션이 안 좋은지 다른 때와 다르게 조금씩 흔들리는 그의 등 뒤로 작은 외침이 들려왔다.

 

“선배! 음악실에서 봐요!” 3학년, 같은 플루트 전공 후배였다.

뒤돌아본 세이지가 손을 들어 인사했다. 기숙사에서 조금 쉬었다 갈게, T. 온화한 세이지의 말에 T의 얼굴 가득 함박웃음이 피어났다. 이내 세이지가 다시 등을 돌려 걸음을 옮기자 T가 힐끔, 세이지와 같이 앉아있던 4학년 무리를 흘겨보았다. 눈치 없기는. 명확히 악의 담긴 T의 시선에 그들이 어이없다는 듯이 손가락질했다. 지금 저 새끼 선배 째려보는 거야? 무리에서 실없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문을 열고 나가려던 세이지가 등 뒤의 소란함에 잠시 두 눈을 꽉 감았다. 마냥 침묵이 흐르는 것도 원치 않았지만, 저런 분위기를 의도했던 것은 아니었다. 세이지는 자신의 무력함을 인정했다.

 

 

형이라면, 좀 더 확실한 방법으로…….

 

 

벌컥, 문을 열어 재꼈다. 온도 차이 때문인지 문이 쉽게 열리지 않아 어깨에 힘을 주어야만 했다. 빠른 걸음으로 학생식당을 빠져나간 세이지가 엄지로 제 입술을 살짝 짓누르며 그대로 손끝으로 훑듯이 턱까지 쓸어내렸다. 저도 모르게 굳어서 굳게 다물고 있던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하마터면 못난 꼴을 보여줄 뻔했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들자 바람이 한차례 불어왔다. 바람이 그에게 속삭였다. 위선자는 벌을 받아야 해. 세이지는 그의 말을 무시했다. 나는 위선자가 아니야. 바람이 그쳤다. 바람이 굳이 일러주지 않아도 세이지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 이중적인 사랑, 이중적인 증오, 이중적인 인식. 그것들은 가끔 세이지의 꿈속에 찾아와 귓속에 속닥였다. 그를 사랑해, 그렇지? 그를 미워해, 그렇지? 그의 심장에 칼을 꽂아. 그리고 그 차가운 칼날에 키스해. 어느 날 그 뜨거운 것의 공포를 결국 이겨내지 못한 세이지가 비명을 지르며 싫다고 울부짖었던 때에, 꿈속에선 단 한 번도 들려오지 않았던 가장 믿음직한 목소리가 침범했다. 세이지, 우는 거야? 급하게 눈을 뜬 세이지가 꿈의 잔향이 채 가시기도 전에 제 눈앞의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흐른 눈물 때문에 귓불이 간지러웠다.

“울어버릴 정도로 아주 아팠던 모양이로군.”

잠 깨워서 미안해. 울지 말렴, 세이지. 그답지 않게 까칠한 입술이 세이지의 이마에 닿았다 떨어졌다. 이내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에 대고 세이지가 작게 속삭였다.

 

“……형도, 잘 자.”

세이지의 큰 형, Chamomile Clary가 뒤돌아보았다. 웃고 있었다.

 

Good night, Sage.

 

 

 

**

톡톡, 소란스러운 음악실은 도저히 뭔가 연습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결국 연습까지 방해받게 생겼다는 생각을 하자 아무리 넓은 수용공간을 지닌 세이지라도 머리 한구석이 아파질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세이지가 찾은 음악실 주변엔―신기하게도― 평소 얼굴을 꽤 많이 마주쳤던 후배나 동급생이 많았던 덕분에 세이지의 간단한 부탁에 가까운 주의만으로도 쉽게 잠잠해졌다. 다만 문제는 잠잠해지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다간 플루트를 쥐고 있는 시간보다 주의를 시키기 위해 벽을 톡톡, 두드리는 시간이 더 길어지겠다 싶어 결국, 세이지는 자리를 정리했다. 음악실에서 보자던 T는 연습할 생각이 없는지 손에서 플루트 케이스를 내려놓을 생각도 하지 않고 제 또래와 신이 나게 떠들고 있었다. 연습 봐달라는 줄 알았는데, T가 있는 쪽을 가만히 바라보던 세이지가 시계를 바라보았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세이지는 미련 없이 음악실을 떠났다. T, 먼저 갈게. 연습 열심히 해. 상냥한 선배의 격려에 T가 깜짝 놀라 허리 숙여 인사했다.

 

“안녕히 가세요, 세이지 선배!”

아, 저 사람이 그 세이지 선배야? T의 우렁차던 목소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제 또래 사이로 섞여 들어갔다. 상냥하지? 나랑 같은 전공이셔. 노골적인 자부심에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세이지의 눈가가 살짝 떨렸다. 아무래도 익숙해지기 어려웠다.

 

 

 

**

구, 궁금, 하면 아홉, 시까지, 구, 구성당으로, 와.

벤 브래들리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것은 판도라의 상자와 같았다. 어쩌면 마트료시카 같은 것이기도 했다. 악마의 꾐에 넘어가 상자 뚜껑을 열면 그 속에선 갖가지 악몽들이 튀어나온다. 세이지가 벤 브래들리의 꾐에 넘어가 상자 뚜껑을 열었을 때, 그곳에선 전혀 생각지 못한 것이 튀어나왔다. 또 다른 판도라의 상자였다. 세이지는 그의 퀭한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저 멀리서 파견 성가를 부르는 성가대의 고운 음성과 악기의 하모니가 어우러지고 있었다.

 

 

 

**

음악실에서 나왔던 게 8시 30분쯤, 세이지가 구성당 앞에 도착했을 땐 이미 9시가 조금 지난 시간이었다. 구성당 안에선 분명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러나 세이지는 섣불리 그 안으로 걸음을 내딛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 와서 겁먹은 거야? 오른손을 두어 번 쥐었다 펴던 세이지가 검지 위 금색 묵주반지에 짧게 키스했다.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그 날 아침, 벤 브래들리가 저를 향한 낯선 유혹을 할 때 세이지는 불현듯 한 성경 구절을 떠올렸다. 그리고 이미 그때부터 이곳에 오리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세이지에게 이 위험한 판도라의 상자는 숭고한 정신이었다. 어떠한 희생이 일궈내는 작은 기적, 그런 것을 바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번에도 상자 안에는 또 다른 상자가 들어있을 것이다. 그렇게 몇 번이고 호기심을 벗기다 보면 어느새 손가락 마디 하나만 한 작은 상자 하나가 남을 테고, 그 뚜껑마저 기어코 열어버리면 그 안엔 그대로 저를 죽여 버릴 독약이 한 모금 들어있을 것이다.

 

―그 독약을 마시는 것이 당신의 뜻이라면.

일종의 프락치, 그리고 이미 죽어버린 생명에 대한 작은 복수, 보답. 그 누구도 맡기지 않은 부담을 등에 안고 세이지는 믿었다. 지금 해야 할 일은 낡은 구성당 안으로 들어가는 일이라고. 어느 쪽이든 이 무리를 조금 더 지켜봐야 할 필요는 있었다.

낡은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마치 어린 짐승의 울음소리 같기도 한 음울한 마찰음이 가시자 세이지의 눈앞에 어둠이 닥쳐왔다. 어쩐지 익숙한 어둠이었다. 낡은 구성당 안은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검은 망토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검은 망토.

 

세이지가 긴 손을 들어 천천히 제 입을 가렸다. 이곳은 꿈속이었다. 꿈보다 훨씬 논리적이었으나 현실적이지 못한 풍경이 그에게 인사하고 있었다. 안녕, 오랜만이야.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가락에 성물(聖物)이 걸려있었다. 순간, 세이지의 정신이 아찔해졌다.

처음이야?

세이지의 눈동자가 천천히 돌아갔다. 고개가, 어깨가, 허리와 골반이 마저 돌아가고 나서야 세이지와 그는 눈을 마주칠 수 있었다.

반응을 보니까 처음이구나. 그가 옅게 웃었다.

 

 

 

**

그 소년은 나에게 죄를 물었다.

사회학 교사는 ‘죄는 누구에게나 동등하다.’고 말했다.

 

 

“죄는 누구에게나 동등해.” 비겁해지기로 했다.

 

 

 

**

세이지는 그날 오랜만에 악몽을 꾸었다. 늘 그에게 속삭이던 이중인격자들의 목소리는 그새 바뀌어 있었다. 세이지, 나를 사랑하지? 세이지, 나를 미워하지? 내 심장을 겨눈 그 칼은 언제 치워줄래? 주께선 원수도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널 누구보다 사랑하는 날 죽이고 싶어 하는 넌 과연 사랑의 자격이 있을까?

널 사랑해, 세이지.

 

날 죽여줘, 세이지.

 

 

**

언젠가, 악마는 유혹을 위해 성경 구절을 인용한다는 말을 들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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