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한 인디고 블루의 머리카락은 뒷목을 약간 덮는 기장으로, 차분하게 매만지려 한 노력이 보이지만 다듬는 것에 실패했는지 조금 뻗쳐 있다. 그런 앞머리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눈동자는 봄꽃을 닮은 분홍색이다. 항시 구부정한 자세는 그를 더욱 왜소하고 내성적인 사람으로 만든다. 옷은 깨끗한 교복 차림인데 차고 있는 시계며 구두가 슬쩍 보아도 고가의 것인지라, 전체적인 분위기에서 이질감을 떨쳐낼 수가 없다.
차석 입학생. 수학이 특기이고, 특히 해석학에 큰 재능을 보이며 입학 이래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러나...
1년 전, 방학기간 중 홀로 짧은 여행을 떠났던 그는 불의의 교통사고에 휘말린다. 이후 치료와 회복을 위해 한동안 휴학을 하고 아카데미로 돌아온 그의 모습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밝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인상 찌푸린 표정이 디폴트가 되어버린데다가 그렇게 좋아하던 수학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관심뿐만이 아니라 순위권을 지키던 성적마저도 뚝 떨어져버렸으니, 원래의 클로드를 알고 있던 선생님이며 학생들은 묘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팩스턴 가는 작금의 예술계를 논할 때 빼놓기 힘들 정도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대부호 집안이다. 그러나 팩스턴의 이름을 단 이들이 직접적으로 붓과 끌을 잡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이유는, 예술가들을 지원하거나 각종 문화 행사를 주최하곤 하는 이른바 예술계의 '큰손'이라는 것이다.
클로드 팩스턴의 가족은 총 다섯명이다. 정계까지 인맥을 둔 '수집가' 할머니, '예술 애호가' 부모님, 그리고 어째 수집에는 별로 욕심이 없는 누나와 클로드 본인. 클로드의 욕심으로 기르기 시작한 동물들은 가족에서 논외다.
호불호에 대해 스스로 명시하는 법이 없는데(모든 대답을 몰라, 혹은 알아서 뭐하게?로 일관하기에) 딱 한 가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조용히 차를 마시는 것을 꽤나 좋아하는 듯하다. 사고 이전부터 면식이 있던 사람이라면 그가 원래는 떠들썩한 분위기와 문제 내기 그리고 도넛을 좋아했다던가 지는 것을 싫어했다던가 하는 것을 기억할지도 모른다.
기숙사 생활이 아닌 통학을 한다. 본가로부터 검은 리무진을 타고 다니지만 아주 이른 시간에 등교하고 빨리 하교하는 일이 잦기 때문에 그 모습을 본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은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