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정하게 아래로 내려 두 갈래로 묶은 청록색 머리카락, 아래로 내려갈수록 연두색이 좀 더 강해진다. 청보라색 눈동자. 절제된 몸짓이나 태도가 사뭇 다른 사람인 것 같다는 인상을 준다. 귀의 피어싱은 여전히 취향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지만.
이지/상식적/신중함/여전히 몽상가
말을 더듬는 버릇은 깔끔하게 고쳤다. 잘 다듬어진 말투, 흠결을 찾을 수 없어 보이는 화법 사이사이로 부드러운 센스가 스며들어간다. 공적인 자리에서는 제대로 각이 잡혀 있지만, 오래 본 친구들 앞에서는 그나마 여유를 되찾는다. 다만 어렸을 때보다는 훨씬 신중해졌다. 서스럼없는 가까움이나 두서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은 볼 수 없다. 책임을 통감하는 사람, 여전히 취향의 확고함은 존재한다. 하나 그대로인 것, 여전히 뜬구름 잡는 몽상에 빠져 지낸다는 것 정도일까… 입 밖으로 잘 내지 않을 뿐이다. 그리고 둘, 사실은 소심한 성격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는 점. 신중함으로 보이는 것이 다행이다.
* 크립토나이트는 이세리나가 성인이 되고 몇 해 정도 지나서 해체 소식을 알렸다. 정확한 시점은 졸업 시험이 있던 해의 6년 후. 이 한 해 동안은 몸이나 마음이나 제법 앓았다던데 어쨌든, 이세리나는 시간이 지나고 서서히 회복했다. 많은 굿즈들을 상당수 정리하고, 한동안 멍 때리거나 슬퍼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묻는다면 좋아했던 시간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지금은…완전히 괜찮다. 오히려 락밴드치고 이 정도면 장수했다며 대수롭지 않게 대꾸한다. 무언가를 열렬히 좋아하는 광 팬의 면모는 없어졌다. 콘서트를 간다거나 물건을 모은다거나 그런 것 일체를 졸업했다. 노래는 여전히 핸드폰의 플레이리스트에 굳건하게 등록되어 있지만.
* 성인이 되자마자 기획서를 올려 규모가 매우 큰 라이브 공연장 모쉬MOSH를 지었다. 한 해에 두 번, 겨울에 신인이나 경력 락밴드, 인디밴드를 발굴하고 여름에 정기적으로 브리엔의 이름 아래 후원하는 정기공연을 연다. 퀄리티가 좋기로 정평이 나 내로라 하는 사람들이 주목하는 음악 행사로, 주소를 공유할 만한 아카데미의 친구들이라면 모쉬의 VIP 초대권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다만 운영 중 한 번 제법 크게 논란이 일었다. 모쉬의 이름 아래 후원했던 밴드 ‘네더도어’가 팬을 향한 폭언 및 인성논란의 도마 위에 오르면서 아직 완전히 기반을 다지지 못한 모쉬의 프로젝트가 엎어질 뻔했다. 기업의 이미지를 중시하는 브리엔 측에서는 이 행사의 중단을 검토할 만큼 심각하게 받아들인 사안이었으나 이세리나의 강경한 설득으로 행사는 명목을 이어갈 수 있었다.
매년 만우절에는 락 공연이 아니라 클래식 오케스트라를 초대한다. 자신의 취향은 아닌 누군가를 위해서.
* 솔브패스를 따자마자 대학교에 조기입학했다. 건축/경영학을 배우고 굴지의 건설회사 브리엔의 지분을 일부 이어받았다. 차기 브리엔 경영의 유망주로 주목받는 중. 올림픽 스타디움이나 높이 올라가는 빌딩은 다 브리엔의 몫이다. 이세리나는 건축가가 아니라 경영인 소속이다.
* 그 외에도 갤러리 녹틸루센트Noctilucent의 소유주. 현대미술을 이끌어가는 중견작가들의 작품이 주로 올라온다. 이세리나 브리엔의 이름으로 두어 번 정도 전시를 올렸다. 구름 사진 및 그림 전시. 22살 초, 익명의 작가와 함께 구름 전시를 성황리에 마쳤다.
* 호러 취향은 그대로지만 예술이나 건축 관련 영화나 컨텐츠를 주로 소비하다 보니 제법 누그러졌다. 여전히 보기는 미동없이 잘 보지만. 그래도 전처럼 열광한다는 기분은 아니다. 그리고 해골 취향은 없어진 것에 가까운 듯 하다. 그때는 내가 어려서...
* 물고기를 한번 키웠었다. 대학 시절 아무리 정신없어도 다시 정신을 다잡기 위해. 블랙네온테트라, 블루레인보우, 베타... 어항은 아버지의 취미에 가까웠는데 한번 이해해 보려고 시작한 경위도 있다. 물론 보면서 마음이 차분해지기도 했고. 학업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항 속에 자란 수초들을 가위로 마구 자르고 물고기들을 구경하며 마음을 가라앉히고는 했다. 지금은 어항이 비었다. 새로 키울지 그만둘지 고민하고 있다.
* 가끔 베이킹을 한다. 철두철미하게 확인하는 버릇 덕에 실력이 제법 좋아졌다. 먹고 싶은 건 웬만큼 만들 수 있는 수준.
* 기분따라 코튼이나 무화과 향의 향수를 쓴다.
* 흡연자. 멋지잖아~. 밴드가 한다니까 나도 꼭 한번 같은 담배를 피워보고 싶었어. 자주 피는 것 같지는 않다.